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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적시는 뭉클한 클래식

가을을 적시는

뭉클한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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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선율이 차가운 계절을 그윽하게 적십니다. 가볍고 찬 공기가 묵직하게 가라앉으면서, 뭉클한 감성이 피어오르지요. 따뜻한 차 한잔 곁에 두고 감상해 보세요. 가을에 가만히 듣기 좋은 클래식 4곡을 추천합니다.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1823년 비엔나 악기 제작자 요한 게오르그 스타우퍼가 세상에 없던 악기를 만들었습니다. 분산시킨 화음을 의미하는 '아르페지오'에서 이름을 딴 아르페지오네입니다. 아르페지오네는 기타와 유사한 구조에 첼로와 같은 방식으로 연주했습니다. 음색은 섬세하고 부드러웠고요. 아르페지오네는 개발 초기 영롱한 선율에 힘입어 반짝 인기를 끌었습니다. 하지만 음량이 작아 피아노에 묻히기 쉬웠고, 내구성이 약했습니다. 개발 초기 반짝 인기를 끈 아르페지오네는 10년이 채 되지 않아 관심에서 멀어지고 말았지요. 더 이상 생산되지 않자 결국 역사 속에 사라졌습니다.

슈베르트가 작곡한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는 아르페지오 연주를 염두에 둔 최초이자 마지막 곡입니다. 당시 아르페지오네를 연구하고 연주한 음악가 빈센츠 슈스터가 27세의 젊은 슈베르트에게 작곡을 의뢰했어요. 그렇게 악기가 개발되고 1년 정도 지난 1824년 11월경 곡이 완성되었습니다. 마이너 선율이 쓸쓸한 정서를 건드리면서, 경쾌하고 빠른 리듬이 기분을 가볍게 환기시킵니다. 비록 아르페지오네는 명맥이 빨리 끊겼기에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역시 원곡의 음색을 듣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첼로, 바이올린, 비올라, 클라리넷, 기타, 플루트 등으로 편곡되어 다양하게 감상할 수 있답니다.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감상하며, 찬바람에 움츠렸다가 반짝이는 햇살에 미소 짓는 가을 어느 날을 떠올리면 어떨까요?

윌리엄 볼컴
우아한 유령

윌리엄 볼컴은 퓰리처상뿐 아니라 그래미 어워드, 디트로이트 뮤직 어워드를 수상한 유명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입니다. 2007년에는 미국 '올해의 작곡가'로 선정되기도 했지요. 그는 교향곡과 오페라, 실내악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광범위한 작곡 활동으로 유명합니다. 그중에서도 5분 남짓의 짧은 연주곡 '우아한 유령'이 각별히 인정받고 있어요. 그 자신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아한 유령'은 클래식 선율과 재즈풍 리듬이 어우러진 곡이랍니다. 윌리엄은 1970년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추모하며 이 곡을 지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한때 댄서였고, 평소 춤 추기를 즐겼다고 해요. 경쾌하고 가벼운 선율으로 춤을 즐기는 아버지를 묘사했지요. 곡 전반에 아버지를 기리는 아들의 마음이 깃들어 있습니다.

우아한 유령 역시 연주자에 따라 분위기가 다릅니다. 바이올린 버전은 구슬픈 정서가 돋보이고, 피아노 버전은 리듬감이 넘치기도 하지요. 악기가 무엇이든 가을 녘 감성을 물씬 느끼게 합니다.

프레데리크 쇼팽
왈츠 9번 '이별의 왈츠'

1835년경 어느 날, 쇼팽은 독일에서 부모님을 만나고 돌아오면서 폴란드에 사는 지인 보진스카 백작에게도 들릅니다. 그리고 그들의 딸 마리아 보진스카를 만나 사랑에 빠졌어요. 마리아는 그림을 잘 그려 쇼팽의 초상화를 근사하게 그리기도 하고, 노래와 작곡에도 소질이 있었습니다. 감각이 뛰어난 두 사람은 예술에 대한 담론을 나누며 서로의 마음에 급격히 스며들었죠. 쇼팽이 프랑스로 돌아온 뒤로도 두 사람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약혼까지 했습니다. 이 즈음 쇼팽이 마리아에게 선사한 곡이 바로 왈츠 9번, A♭장조 작품69번의 1입니다. 악보에는 '마리아를 위해, 드레스덴, 1835년 9월'이라고 적었습니다. 감미롭고 서정적인 곡에 사랑을 듬뿍 담았지요.

하지만, 쇼팽은 몸이 약했습니다. 보진스카 백작 부부는 딸의 행복을 위해 결혼을 반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모님의 반대를 이기지 못해 마리아도 편지를 서서히 줄였고요. 쇼팽은 끝내 백작 부부로부터 결혼을 반대한다는 통첩을 받았습니다. 스스로 건강 상태를 알았던 쇼팽은 조용히 거절을 받아들였어요.

이별 후 쇼팽은 마리아가 준 선물과 편지를 모아 리본으로 묶은 뒤 'Moja bieda(나의 슬픔)'를 적어 서랍 깊숙이 묻어두었습니다. 마리아에게 준 곡의 사본 역시 함께 묶어두었지요. 이 곡은 쇼팽이 세상을 떠나고 6년이 지나서야 공개되었답니다. 쇼팽의 친구이자 피아니스트 율리안 폰타나가 쇼팽의 또다른 왈츠 두 곡과 함께 묶어 악보를 출간했지요. 마리아 역시 악보를 소중히 간직하다가, 훗날 '이별의 왈츠(Valse de l'adieu)'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이후 오늘날까지 이 곡은 '왈츠 9번' 못지않게 '이별의 왈츠'로 널리 불리며 사랑받고 있습니다.

모데스트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

모데스트 무소륵스키의 대표곡이죠. '전람회의 그림'은 제목 그대로 미술 전시회에서 느낌 감상을 음악으로 풀어낸 곡입니다. 전시회의 주인공은 빅토르 알렉산드로비치 하르트만, 건축가이자 화가, 그리고 무소륵스키의 절친입니다. 하지만 하르트만은 39세의 젊은 나이에 갑작스럽게 운명을 달리했는데요. 이듬해 주변 예술가들이 힘을 모아 그의 추모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전시회에는 하르트만이 그린 수채화와 데생 등 그림을 비롯해 건축 설계 도면과 의상 디자인, 무대 배경까지 공개했습니다. 무소륵스키는 전시회 작품 열 점에 대한 감동을 피아노곡으로 재구성해 '전람회의 그림'을 완성했지요.

전람회의 그림은 '프롬나드(Promenade, 산책)' 기법으로도 유명합니다. 곡 사이에 프롬나드를 끼워 넣어, 작곡가가 이 그림에서 저 그림까지 이동하며 느낀 감정을 생생히 전달하지요. 불규칙적인 악상의 '1곡 난장이'는 절뚝거리는 작은 난장이를 그린 그림을, '2곡 고성'은 중세의 옛 성에서 노래 부르는 음유시인을 담은 그림을 묘사합니다. 프랑스 소도시 시장의 거친 난동을 표현한 '7곡 리모주의 시장'과 성대한 대문을 통과하는 행렬의 행진곡 같은 '10곡 키예프의 대문'까지, 곡의 밸런스와 묘사력이 훌륭합니다.